-2014년 3월 4일
출판사:창비
작 가: 설흔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부령으로 가는 길
달라진 건 내 마음가짐이었다. 전처럼 견디기가 어렵지 않았다. 나를 멀리학고 비웃는 그들을 오히려 측은히 여기게 되었다.(p.64)
-이옥의 아들에게 매질을 하다.
무엇 하나 염려할 이유가 없는 호시절이지만 이즈음 내 마음속으 어쩐지 허전하기만 했다. 오늘도 어제 같았으니 내일도 오늘 같을 터였다. 왜 기런것일까. 그 이유는 나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p.84)
-나한 거울 그리고 책으로 빚은 술
눈이 같으면 코가 다르고 코가 같으면 입이 다르고 입이 같으면 얼굴빛이 다르고 모두 같으면 키와 체구가 다르고 키와 체구가 같으면 자세가 다르다. 나한들은 혹은 서고 혹은 앉고 혹은 숙이고 혹은 옆에것에 붙고 혹은 왼쪽을 돌아보고 혹은 오른쪽을 동아보고 혹은 남과 이야기하고 혹은 글을 보고 혹은 글을 쓰고 혹은 귀를 기울이고 혹은 칼을 지고 혹은 어깨를 기대고 혹은 머리를 떨어뜨리어 근심하는 듯하고 혹은 생각하는 듯하고 혹은 기쁜 듯 코를 쳐들고 있다. 혹은 선비 같고 혹은 관리 같고 혹은 아녀자 같고 혹은 무사 같고 혹은 병자 같고 혹은 어린애 같고 혹은 늙은이 같다.(p.107)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지난날에는 가을 물처럼 가볍고 맑았던 네 얼굴이 이제는 어찌하여 마른나무처럼 축 처져 있는가? 지난날에는 연꽃처럼 빛나고 저녁노을처럼 반짝이더니 이제는 어찌하여 이끼 낀 바위처럼 검푸른 빛으로 되었는가? 지난날에는 옥구슬처럼 영롱하고 거울처럼 맑더니 이제는 어찌하여 안개에 가린 해처럼 빛이 없는가?
정신이 메마르고안색이 물기 없게 되며 육질이 떨어지고 피부가 거칠어지며 눈썹이 하얗게 되고 눈이 흐리게 되며 입술이 칙칙하고 이빨이 성기게 된다는 것은 진실로 이미 정해진 바였다.(p. 113)
-글은 길 위에서 탄생한다.
나는 그들의 마음에 들어 간 것이 아니라 저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았을 뿐이었다. 같은 처지의 사람으로서가 아닌 현감의 시선만이 남아 있었다.(p. 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