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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왜? 1945~2015

성혜영 | 2016.08.10 07:00 | 조회 711

 

-김동춘 지음

-사계절

-2016년 6월 29일

   작년 밑줄 독서모임에서는 현 앨리스와 그의 시대, 일본제국 vs 자이니치, 역사 e1 등 한국 현대사의 질곡진 시대 속 인물과 역사적 사건을 정리해 놓은 내용들을 유독 많이 읽었다. 매번 한국인으로서 답답함을 많이 느꼈었던 것 한해였던 것 같다. 이 책은 한국 현대사 개설서는 아니지만, 공식화된 한국 현대사에 대한 비판과 재해석을 담으려 했다. 한국 현대사를 원인과 결과들이 퍼즐을 맞추듯이 연결되어서, 대한민국이라는 한 장의 그림으로 완성해 놓은 것 같다.

  지금 당신은 어떤 나라에 살고 있습니까?

강자는 많은 권리와 자유를 누리지만, 약자는 굴욕과 비인간적인 삶을 감수하고도 제대로 항변조차 못하는 상황은 일제가 물러간 1945년 8월 15일 이후에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 국민의 생명과 존엄성, 안전한 삶보다 권력자의 위산과 기업의 이윤이 언제나 더 중시되었다. 이런 나라를 국민주권이 보장된 온전한 국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70세는 참회록을 쓰는 나이다. 해방 70년을 맞은 우리나라의 현재가 바로 그러한 때이다. 한 국가의 참회록은 과거에 대한 참회이면서 동시에 그 참회를 딛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결의이기도 하다. 이 책은 참회와 결의에 가슴 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필독서다.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1부. 백성은 나라랄 잃고, 나라는 주인을 잃고

조선 근대화와 해방의 두 갈래 길

‘일제 식민지 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발언 외에도 그가 했던 교회 강연에는 조선 민족과 강토에 대한 비하와 자학이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문창극 호부자가 지난 2011년 6월 15일 온누리 교회 강연(수요여성예배)에서 ‘식민지 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가 이조 500년을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이나 시련과 고난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 외에도 문후보자가 핵심적인 주장은 조선 민족의 게으름이었다. 그는 일제시대 때 기독교가 게으름을 깨우쳐 줬다는 해괴한 논리를 폈다.

-문창국 “게으른 조선 민족 체질엔 공산주의가 딱 맞아.” 미디어 오늘, 2014년 6월 18일

   일제의 가혹한 직접 통치는 조선 땅에서 독립운동을 하거나 건국을 준비하는 일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결국 무력으로 독립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사들은 탄압 속에서 일제의 항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떴고, 해외 무장 독립 투쟁 세력은 동포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직 개화를 명문으로 일제에 복종하여 부와 권력을 누린 기회주의자들만이 경륜을 쌓고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그들은 부일협력의 부끄러운 과거 때문에 8.15 이후 미국, 소련, 중국 등 자신이 망명했던 나라의 인맥과 후광을 등에 업고 있었던 ‘해외파’ 필사적으로 손을 잡으려고 했다. 돈, 지위, 인맥 등 강력한 밑천을 가진 이들 부일 세력, 재력을 바탕으로 미국이나 일본으로 유학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해방’후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했다. 8. 15이후 한반도의 역사, 그리고 대한민국사를 굴절시킨 식민지의 유산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 후 전개될 ‘해방공간’에서, 38선 이남의 남한 지역에서는 원하지 않았던 두 손님, 그러니까 ‘미국/소련’과 ‘기독교/공산주의’거 맞붙었다. 구한말의 개화/독립 노선이 연장전을 벌인 것이다. 서양의 선진화의 길을 따르자는 신개화파인 친미파와 친소파대 민중의 힘을 바탕으로 독립국가를 건설하자는 신독립파, 자주파가 본격적으로 한판 붙게 됐다. 물론 일본 패망 직후 납작 엎드려 있다가, 강대국의 힘에 편승하여 다시 일어설 길을 찾던 부일 관료, 군인, 경찰 등 ‘생존파’가 가장 막강한 힘을 가졌고, 민중의 이익에 기초하는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이고 민중의 각성과 조직된 힘으로 진정한 독립을 이루자던 민권 개화파와 민권 독립파의 힘은 약했다. (P. 50~51)

 

-다시 8.15의 성격을 묻다.

   사실 열강이 아시아 여러 지역을 넘보던 구한말 이후 조선은 미국의 중요한 관심 지역이 아니었다. 그래서 미국은 일본의 조선 침략과 지배를 묵인했다. 하지만 미국으로서는 한반도가 완전히 소련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는 상황은 막아야 했다.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구상은 완성되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 전쟁부 작전국은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는 조건으로 일본이 타이완과 조선을 계속 지배하도록 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미소의 38선 분할 점렴은 임시 조치에 불과했다. 미국의 제안한 분할 점령을 소련이 받아들인 이유는 한반도의 반을 차지하는 안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독일과의 전투에서 만 1,000만 명 이상의 군인이 목숨을 잃은 소련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게다가 소련이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것은 1945년 2월 이후였기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일본군의 항복을 받아내는 데는 별로 역할을 한게 없었다.

일본 천황 히로히토는 1945년 초부터 이미 항복할 의사가 있었고, 미국도 일본의 항복은 시간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1845년 8월 도쿄가 아닌 히로시마와ㅑ 나가사키에 떨어진 두발의 원자탄은 일본의 항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 된다. 미국은 일본을 조기에 항복 시키자는 군사 작전상의 필요에서가 아니라, 전후 질서에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외교의 비장 카드로 핵을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핵 투하는 사실 2차 세계대전의 종결이 아니라 냉전이라는 새로운 미소 대립 시대의 시작을 의미했다.

<중략>

   일본 패망 직전, 김구나 여운형 등도 조선인이 항일 무장투쟁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이 항복할 경우 초래될 결과를 크게 걱정했다. 그래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해서 태평양전쟁을 일으키자 [대일선전성명서](1941. 12. 10)를 발표했고, 광복군을 중국 국민당 군대에 편성시켜 참전할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결국 전투를 해보지 못한 채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들은 김구는 “기쁜 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따이 꺼지는”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8.15 직후 “공짜 점심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확인됐다. 일본을 힘으로 물리치지 못한 것은 물론, 다수의조선 지식인들이 노골적으로 일본의 침략 전쟁에 협력하고 식민지 정책을 지지했던 대가는 엄혹했다. 냉엄한 국제정치의 논리는 식민지 시대뿐 아니라 일본 패망 후에도 계속됐다. (P. 59~63)

<중략>

   일제 강점기의 행적이 떳떳치 못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은 계속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이라 주장해왔으며, 최근에는 아예 그날이 사실상 ‘광복’일이라 주장한다. 급기야 2015년 8월 15일에는 ‘광복 67주년’이라고 플래카드까지 내걸었다. 1945년 8월 15일, 즉 조선의 온 백성들이 환호했던 그날은 부일 협력 세력에게는 악몽과 같은 사망 선고일 이었지만, 남한 단독 정부를 수립한 1948년 8월 15일은 그들이 기사회생한 날이었다. 남북한의 대립이 지속되는 한 그들은 계속 자신들이 좌파의 위협 앞에서 ‘자유’를 찾고 나라를 세웠다면서 애국자로 행세할 것이다. (P. 67)

 

 

-대한민국 보수의 기원

   오랜 세원 미국에서 자유주의와 반공주의 사상을 몸에 익힌 이승만은 해방 이전부터 일제가 물러간 조선에 공산주의 세력이 영향을 미칠 것을 걱정했다. 그래서 그는 우익인 중국의 임시 정부를 지지했다. 귀국 후에는 자신의 미국 인맥, 기독교 인사, 식민지에서 군, 관료, 경찰 하수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과 손을 잡았으며, 극히 평판이 좋지 않은 친일 기업가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 대한경제보국회 소속의 기업가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일제 부역 행위를 면죄받기 위한 보험 차원에서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이승만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

결국 미군정에 적극적으로 협력했거나 미군정이 직접 고용한 미국 유학파 지식인들과 기독교인들은 우익 일색이 되었다. 앞서 미군정이 군정장관 고문으로 임명한 11명 중 7명이 한민당원이었고 대부분 지주출신 혹은 기독교 인사였다. 이들에 대한 타임지의 모스크바 지국 통신원이었던 리처드라우터바크는 이들이 “조선인들에게 반목과 무시를 받고 있던 일물들”이라고 평가했다. (P. 75)

 

 

-왜 국가보안법은 헌법 위에 군림해왔나?

   8.15 이후 최능진이 맞닥뜨린 참혹한 상황은 대한민국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8. 15직후 이북에서 건국준비위원회 활동을 하다가 소련군의 탄압을 받아 월남한 그는 미군정의 경무국 수사국장으로 발탁되었으나 친일 경찰 등용과 부패에 항의하다가 좌천됐다. 이 후 5. 10 총선 때 이승만의 출마지역인 서울 동대문구 갑구에 출마했지만, 선거관리위원회는 그가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후보등록을 취소했다. 이후 이승만은 대통령이 되자마나 자신에게 도전한 최능진을 ‘국가 전복 기도’라는 죄목으로 기소했다. 최능진은 1심에서 3년 6개월이라는 가벼운 형을 받았지만, 김구 암살 직후 옥중 단식투쟁을 했다는 죄목으로 2심에서 징역 5년으로 형량이 늘어났다. 그는 형무소 수감 중 한국전쟁이 터지자 인민군 치하의 서울에서 정전, 평화운동을 벌였다. 그 일로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고, 1951년 2월 11일 대구 인근에서 처형당했다. (P. 91)

 

 

-한미관계는 외교관계?

   1987넌 민주화 이후에는 그때 까지 감히 건드릴 수 없었던 주한미군 반대, 즉 미국 철수, 감축운동, 기지반환운동, SOFA개정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미국은 대학생들의 반미운동을 ‘히트 앤드 런’작전(홍보 효과를 노린 행동)이라고 경멸하듯이 평가했지만, 이 운동의 바탕에는 미국의 세계 전략이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며 특히 동아시아에서 미국은 개화기 이래 대체로 일본을 편들면서 한국을 희생양으로 삼아왔다는 판단이 있다.

국제 정치에서 강자가 약자에게 무관심하고 무지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미국은 한국을 잘 모르고, 또 알 필요를 느끼지도 않았다. 한국이 어떻게 되는 가는 그들에게 그다지 큰 변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개구리는 아이들이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국가 간의 힘이 극도로 불평등한 국제 관계에서 약소국은 강대국에게 과도하게 집착할 수도 있고, 원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강대국, 특히 세계를 움직이는 패권국은 바둑판의 돌을 움직이듯이 한 나라에 대한 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에 사실상 어떤 국가나 민족에 대해서도 특별히 적대적이거나 우호적이지 않다. 반명 약소국 사람들은 패권 국가에 과도하게 매달리거나 격렬하게 증오를 표시하기도 한다. 집권 세력은 자신의 입지를 유지 하는데 강대국의 지원이 필요하고, 집권층을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그러한 외세 의존족인 태도가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P. 18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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