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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성혜영 | 2016.08.10 07:02 | 조회 77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2016년 7월 6일

   여행은 좋은 것입니다. 지칠 때도 있고, 실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곳에는 반드시 무언가 있습니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살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신 여행 에세이이다.

 

 

-푸른 이끼와 온천이 있는 곳

   그곳의 아름다움은 사진의 프레임에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 너른 대지와, 거의 영원에 가닿을 듯한 정적과, 깊은 바다 내음과, 거칠 것 없는 지표면을 휩쓰는 바람과, 그곳에 흐르는 독특한 시간성이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진 것이다. 그곳의 빛깔은 고대부터 줄곧 비바람을 맞아오면서 완성된 것이다. 그것은 또한 날씨의 변화나 조수 간만, 태양의 이동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카메라 렌즈로 도려내버리면, 혹은 과학적인 색채의 조합으로 번역해버리면 지금 눈앞에 있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이 되리라. 그곳에 있던 마음 같은 것이 거의 사라져버리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최대한 오래 제 눈으로 바라보고, 뇌리 깊숙이 새기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덧없는 기억의 서랍에 담아 직접 어딘가로 옮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P. 53)

 

 

-타임머신이 있다면

   다만 이럴 경우에는 아무래도 시차가 걸림돌이다. 일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미국 동부까지가면 때마침 라이브 공연이 절정에 접어드는 밤 열시 무렵인 가장 졸린 ‘마의 시각’이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연주 중 곤히 잠들어 버린 적이 몇 번 있다. 1980년대 초에 좋아하는 보컬 마므 머피의 공연을 보러 갔었는데, 맥주를 한잔 마셨다가 기분 좋게 단잠을 들어버려서 어땠는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도 안타깝다. 무척 아담하고 분위기 좋은 지하의 재즈클럽이었데.

‘블루노트’에서 디지 길레스피 밴드를 보았을 때는(안타깝게도 디지는 그 공연 후 얼마 안돼 세상을 뜨고 말았다)미국에 살던 시기라 확실하게 깨어 있었는데, 주위의 일본인 관객들은 대부분 쿨쿨 잠들어 있었다. 장난기 많던 디지는 테이블을 오가며 그들 귓가에 크게 나팔을 불어 깨우고 다녔다. “일본인들은 잠을 자려고 일부러 재즈클럽까지 온다니까” 하고 농담을 던지며 즐거운 듯이 웃었다. 나도 조심스럽게 따라 웃고 말았다. (P. 121)

 

 

-거대한 메콩 강가에서

   이곳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카오냐오를 준비해 승려들이 줄지어 다가오기를 조용히 기다린다. 그런 의식을 매일 빠짐없이 이어가기란 제법 수고스러운 일 일텐데, 루앙프라방에서는 사람들이 영위하는 일상의 자연스러운 일부다. 라오스는 일단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고 있지만 민간의 이런 불교신앙은 국가 시스템을 초월한 곳에서 뿌리 깊고 담담하게, 메콩 강의 흐름이 끊이지 않는 것처럼 변함없이 기능하고 있다. 나 역시 ‘이것도 다 경험이니까’하는 생각에 아직 어두운 새벽 길가에 않아 승려들에게 찹쌀밥을 ‘시주’ 해보았다. 거의 흉내에 가까운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직접 해보고 나니 그곳에 존재하는 토착의 힘같은 것을 , 그 진정성을 신비로울 정도로 강렬하게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종교인들이 종종 "설령 피상적으로 흉내만 낼지라도 계속 실천하다보면 언젠가 진짜가 된다“는 말을 하는데, 아닌게 아니라 정말로 그런 면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P. 164~165)

   "라오스(같은 곳)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베트남 사람의 질문에 나는 아직 명확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라오스에서 가져온 곳이라고는, 소소한 기념품 말고는 몇몇 풍경에 대한 기억뿐이다. 그러나 그 풍경에는 냄새가 있고, 소리가 있고, 감촉이 있다. 그곳에는 특별한 빛이 있고, 특별한 바람이 분다. 무언가를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누군가의 귓가에 남아 있다. 그때의 떨리던 마음이 기억난다. 그것이 단순한 사진과 다른 점이다. 그곳에만 존재했던 풍경은 지금도 내 안에 입체적으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꽤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 풍경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쓸모가 있을지는 알수 없다. 결국은 대단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한낱 추억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래 여행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P. 181~182)

 

 

-야구와 고래와 도넛

   나는 보트를 타고 난생 처음 살아 있는 고래의 실물을 봤는데, 아무리 바라봐도 싫증나지 않았다. 저렇게 거대한 생물이 위장을 꽉 채우려면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를 먹어야 겠구나 실감이 든다. 고래는 하루를 거의 고스란히 포식 작업에 소비한다. 살기 위해 쉼없이 먹는다고 할까, 쉼 없이 먹기 위해 산다. 말러의 심포니도 듣지 않는다. 예약녹화도 하지 않는다. 정기검진도 안받는다. 물론 소설도 쓰지 않는다. 고래들에게는 그렇게 한가롭게 굴 여유가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배 갑판에서 고래를 구경하며 적잖이 철할적 성찰에 빠져든다. 우주적 젼지에서 보면 그들의 생활방식과 우리 생활방식에 본질적으로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보스턴 앞 바다에서 무심히 정어리 떼를 쫓는 것과 말러 교향곡 9번을 집중해서 듣는 것의 의미가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하나의 빅뱅과 또 다른 빅뱅 사이의, 덧없는 일취지몽에 불과하지 않을까.(P. 195)

 

 

-하얀길과 붉은 와인

   왜 토스카나인가? 우리(나와 아내)가 토스카나를 자주 찾았던 이유는 두말할 것 없이 맛있는 와인을 사기 위해서였다. 토스카나의 작은 마을을 돌아보고, 양조장에 들러 마음에 드는 와인을 잔뜩 사들인다. 그리고 마을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게 식사를 한다. 작은 여관에 묵는다. 그렇게 일주일쯤 정처없이 여행하면서 차 트렁크를 와인으로 가득 채워 로마로 돌아온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동안 책상 앞에 앉아, 와인 잔을 기울이며, 꼼지락꼼지락 소설을 써 나간다.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P. 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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