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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성혜영 | 2016.08.10 07:05 | 조회 751

 

-신영복 옥중서간

-돌베게

-2016년 7월 13일

   올해 초 신영복 선생님이 더 좋은 곳으로 가셨다. 그의 마지막 책 ‘담론’을 읽으면서 진한 감동의 여운이 마음속에 오래 새겨졌다. 그래서 20년 2개월 동안 감옥 속에서 사색을 읽어 보아야 한다는 게 모인 밑줄회원들의 하나같은 의견이었다.

 

-바깥은 언제나 봄날

아버님께

   늘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그나마 변함없이 변하는 것은 계절 뿐이라지만 그것도 실상은 춘하추동의 ‘반복’이거나 기껏 ‘변함없는 변화’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이르면 우리는 다시 닫힌 듯한 마음이 됩니다.

이렇듯 닫힌 마음에 큼직한 문 하나 열어주듯, 지난 24일 하루는 ‘사회’(저희들은 담 바깥을 그렇게 부러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사회 사람, 사회 김치, 사회제 등)에 다녀왔습니다. 회덕에 있는 산업기지 개발공사를 들러 청주댐 공사장을 견학한 우량수 사회참관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장 놀랐던 것은 엉뚱하게 ‘바깥’은 봄철이 아니라 뜨거운 여름 이었다는 착각의발견이었습니다. 계절의 한서에 아랑곳 없이 우리의 머릿속에 그리는 바깥은 언제나 ‘따스한 봄날’ 이었던 것입니다. 수인들의 해바라기 같은 키 큰 동경속에서 ‘바깥 사회’는 계절을 어겨가면서까지 한껏 미화되었던 셈입니다.

더위에 후줄근한 길가의 쇠비름이며, 공사장의 남포소리와 풀썩이는 먼지, 시골 아낙네들의 걷어붙인 옷자락…, 바깥은 한더위의 한복판이었습니다. 다만 직진의 고속도로 위 그 선명한 백선과 상점에 진열된 마치 기념사진 속의 아이들 같이 단정한 과실들의 대오만이 유독 여름을 거부하는 어떤 ‘질서’의 표정 같았습니다.

돌아와 소문을 들어올 때, 우리는 잠시 거기 접견실 부근을 서성이는 가족들의 마음이 되었습니다.

1977. 6. 29(P. 107)

 

 

-짧은 1년 , 긴 하루

  아버님께

   우리는 거개가 타인의 실수에 대해서는 냉정한 반면 자신의 실수에 대하여는 무척 관대한 것이 사실입니다. 자기 자신의 실수에 있어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처지, 우여곡절, 불가피했던 여러 사정을 잘 알고 있음에 반하여, 타인의 그것에 대하여는 그 처지나 실수가 있기까지의 과정 전부에 대해 무지하거나 설령 알더라도 극히 일부밖에 이해하지 못하므로 자연 너그럽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징역 속의 동거는 타인을 이해하게 해줍니다.

같은 방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꼬박 마주 앉아서 심지어 상대방의 잠꼬대까지 들어가며 사는 생활이기 때문에 우리는 오랜 동거인에 관한 한 모르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성장과정, 관심, 호오, 기타 사소한 습관에 이르기까지 손바닥 보듯 할 뿐 아니라 하나하나의 측면들을 개별로서가 아니라 인간성이라는 전체 속에서 파악 할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도시의 아스팔트 위 손 시린 악수 한두 번으로 사귀는 커피 몇잔의 시민과는 거리가 멉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과 노력으로 모든 것을 열어놓은 자기 속으로 타인을 받아 들이고 모든 것이 열려 있는 타인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타인을 자신만큼 알기에 이릅니다. 우리는 타인에게서 자기와 많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남는 차이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 ‘차이’에 대한 이해 없이 타인애 대한 이해가 충분한 것이 없으며, 그 사람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이 그의 경험으로 자기 것으로 소화 할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저희들은 이 실패자들의 군서지에서 수많은 타인을 만나고, 그들의 수많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가능성 속에 몸담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P. 115)

 

 

-어머님 앞에서는

  어머님께

   어머님을 뵙고 난 어젯밤에는 터무니 없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때 죽어서 망우리 어느 묘지에 묻혀 있다면 10년 세월이 흐른 지금쯤에는 어머니의 아픈 마음도 빛이 바래고 모가 닳아서 지금처럼 수시로 마음 아프시지는 않고 긴 한숨 한번쯤으로 달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지 모를 일입니다만, 그러나 어제처럼 어머님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머님께서 손수 만드신 점심을 먹는 모습을 보실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비록 추석에 마음 아프시고 겨울에는 추울까 여름에는 더울까 한밤중에 마음 아프시기는 하지만 역시 징역 속이지만 제가 살아 있음이 어머님과 더불어 마음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제나 하시는 말씀처럼 부디 오래 사셔서 여러 가지 일들의 끝을 보실 수 있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1980. 10. 1(P. 159)

 

 

-욕설의 리얼리즘

  계수님께

욕설은 어떤 비상한 감정이 인내력의 한계를 넘어 밖으로 돌출한느, 일르테면 불만이나 스트레스의 가장 싸고 ‘후진’ 해소방법이라 느껴집니다. 그러나 사과가 먼저 있고 사과라는 말이 나중에 생기듯이 욕설로 표현도리 만한 감정이나 대상이 먼저 있음을 사실입니다. 징역의 현장인 이곳이 곧 욕설의 산지이며 욕설의 시장인 까닭도 그런데 연우하는 가 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욕설은 이미 욕설이 아닙니다. 기쁨이나 반가움마저도 일단 욕설의 형식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런 경우는 그 감정의 비상함이 역설적으로 강조되는 시적 효과를 얻게 되는데 이것은 반가운 인사를 욕설로 대신 해 오던 서민들의 전통에 오래전부터 있어온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욕설이나 은어에 담겨 있는 뛰어난 언어감각에 탄복해 오고 있습니다. 그 상황에 멋지게 들어맞는 비유나 풍자라든가, 극단적인 표현에 치우치니 방만한 것이 아니라 약간 못 미치는 듯한 선에서 용케 억제됨으로써 오히려 예리하고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것 등은 그것 자체로서 하나의 훌륭한 작품입니다.

‘사물’과, 여러 개의 사물이 연계됨으로써 이루어지는 ‘사건’과, 여러 개의 사건이 연계됨으로써 이루어지는 ‘사태’ 등으로 상황을 카테고리로 구분한다면, 욕설은 대체로 높은 단계인 ‘사건’또는 ‘사태’에 관한 개념화이며 이 개념의 예술적(?) 형상화 작업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고도의 의식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P. 209)

 

 

-벽속의 이성과 감정

  형수님께

   감정을 이성과 대립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이성에 의하여 감정을 억제하도록 하는, 이를테면 이성이라는 포승으로 감정을 묶어버리려는 시도를 종종 목격합니다.

이것은 대립물로서의 이성을 대립적인 거슬러 오르는 잘못 파악함으로써 야기된 오류입니다. 감정과 이성은 수레의 두 바퀴입니다. 크기가 같아야 하는 두 개의 바퀴입니다. 낮은 이성에는 높은 감정이 관계되는 것입니다. 일견 이성에 의하여 감정이 극복되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경우도 실은 이성으로써 감정을 억누를 것이 아니라 이성의 높이에 상응하는 높은 단계의 감정에 의하여 낮은 단계의 감정이 극복되고 있을 따름이라 랍니다.

감정을 극복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역시 감정이라는 이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특별한 뜻을 갖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해야 할 일은 감정의 억압이 아니라 이성의 계발입니다. 그리고 이성은 감정에 기초하고, 감정에 의존하여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노력은 벽의 속박과 한정과 단절로부터 감정을 해방하는 과제와 직결됩니다. (P. 239)

 

 

-아픔의 낭비

  계수님께

   한 주일간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계수님의 친정 식구들의 후의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위로와 연민과 인정이면서 동시에 정신적 공감을 바탕에 두지 않고서는 베풀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 주일 내내 마치 온 몸에 바늘을 가진 사람처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아프게 하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에 지금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계수님처럼 나를 가장 이해하는 사람일수록 더욱더 아프게 하고 온 느낌입니다. 그러나 계수님께서는 그 아픔을 개인의 아픔으로 간직하지 않고 우리의 이웃과 우리 시대의 삶의 진상을 깨우쳐 주는 사회적 양심으로 키워 가리라 믿습니다.(P.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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