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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성혜영 | 2015.12.30 05:54 | 조회 713

-2015년 11월 18일

-김훈 산문

-문학동네

 

  이 책은 오래전 절판된 산문집 "너는 어느쪽이냐고 붇는 말들에 대하요", "밥벌이의 지겨움", "바다의 기별" 에 실린 글의 일부와 그 후에 새로 쓴 글을 합쳐서 엮었다. 책을 읽는동안, 박웅현의 표현 처럼 미치지 않고서 어떻게 이러한 표현이 나올수 가 있는지...개인적으로 김훈은 우리나라 대표작가임에 확실하다. 글쓰는 이의 재능이 부러울 수 밖에 없는 문체이다. 

 

-라면을 끓이며

  추위와 시장기는 서로를 충동질 해서 결핍의 고통을 극대화 한다. 추운 거리에서 혼자 점심을 먹게 될 때는 아무래도 김밥보다는 라면을 선택하게 된다. 짙은 김속에 얼굴을 들이밀고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 콱 쏘는 조미료의 기운이 목구멍을 따라가면 전율을 일으키고, 취위에 꼬인 창자가 녹는다. 김밥과 라면을 함꼐 먹으면 어떤 맛도 온전히 살아남지 못하고, 뷔페 식당의 음식을 모조리 뒤섞어서 비빈 것처럼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 그걸 알면서도 라면을 먹으면서 김밥을 또 주문하니, 슬프다. 시장기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P. 16)

 

-밥1

  밥벌이도 힘들지만, 법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 않게 힘들다. 술이 덜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 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수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은 없는 것이다.(P. 71)

 

-세월호

  지금 정부는 개방성을 상실하고 짜장면협회나 상가번영회처럼 사인의 이익집단 같은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이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몇몇 고위 관리들이 문책 경질 된것은 책임을 지는 행위가 아니다. 고위공직의 자리가 개인의 사유재산이 아니고, 잘 나가는 공무원의 물좋은 취직자리가 아니며, 천하의 공물일진대 그 자리를 내놓는 것 어떻게 사태를 책임지는 일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책임을 진다는 것은, 지게꾼이 지게를 진다는 말이 아니다. 자리를 내놓고 감옥에 가고, 할복을 하고 분신을 해서 지옥에 간들 이미 그 해악이 세상에 퍼져버린 사태에 대해서 책임을질수 없다. '책임을 진다.'는 행위는 사실상 이루어 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말은 쫒겨 났다는 뜻이고 그 쫓겨남으로써 아무것도 책임지지 못한다. 그것은 무의미한 빈말이다. 그 공허함은 "세월호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무시했기 때문에 침몰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틀린 말은 아니로되, 하나마나 한 말이다. "기업이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는 말도 모두 그러한 것인데, 그 명석함에 가려진 폭력성이 세상의 강자로 행세하고 있다.(P. 174-154)

 

-여자 6

  이래저래 아줌마들은 서럽고 약오르게 되어 있다. 이 사회는 성적 긴장과 유혹을 상실한, 나이든 여자들을 집단적으로 천덕꾸러기로 만들어 가고있다. 여기에는 남자들 뿐 아니라, 성적 자의식을 크나큰 재산으로 간직하고 있는 젊은여성들까지 가세하고 있다. '아줌마'는 이 천덕꾸러기들에 대한 사회적 비칭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얼마 전에 모 대학 학생들이 학내 분규로 강의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하고 있었다. 이 학교 여자교수가 농성장에 나타나서 학생들을 만류했다. 학생들은 "아줌마는 집에가라"고 소리쳤다. 아줌마 교수는 울며 돌아갔다. 여대생끼리 생맥줏집에 모여서 저희학교 여자 교수를 흉볼때도 "그 아줌마..."라고 말한다. 대기업은 아줌마를 무서워한다. 아줌마가 이 나라 소비권력의 핵심부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류 백화점이나 고급 양품점에서는 아줌마를 아줌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줌마를 아줌마라고부르면 아줌마들이 싫어한다는 것을 백화점을 관리하는 높은 아저씨들을 잘 알고 있다. 아줌마는 경멸의 대상인 것이다.(P. 258-259)

 

-고향 2

  어머니는 거칠고 사납고 과장된 말을 무척 싫어하셨다.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말 할수 있는 단정하고 순한 서울말을 어머니는 좋아하셨다. 내가 문 밖 아이들과 놀다 돌아오면 어머니는 "너, 걔네들 말버릇 따라하지 마라, 왜가리 짖어대는 것처럼 말하지 마, 반듯하고 조용히 말해라, 조용히 말해야 남이 듣는다"고 타이르셨다. 어머니는 종결어미가 불분명한 말을 싫어하셨고 늘 대하는 이웃집 아낙네들에게도 말꼬리가 분명한 존댓말을 쓰셨다. 어머니는 이제 너무 늙고 또 아파서, 당신의 고운 말씨를 모두 잃어버리셨고 한 되와 두 되를 구분하지 못하시지만, 내 가난한 어머니의 고향은 향토가 아니라 척도와 언어였던 모양이다.(P.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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