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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블 이야기

성혜영 | 2016.01.07 11:34 | 조회 867

-2015년 12월 23일

-헬렌 맥도널드 지음, 공경희 옮김

-판미동

 

  [메이블 이야기]에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 쯤 경험하게 되는 상실의 슬픔을 견뎌 나가는 과정이 정직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담겨 잇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사진 저널리스트인 아버지와 함께 자연을 누비며 매잡이가 되려는 꿈을 키웠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길거리에서 심장마비로 급사하자 그녀는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이라도 붙들고 싶은 심정으로, 어려서부터 기르고 싶었던 야생 참매에게서 자신의 분노와 슬픔을 발견한다. 나아가 매의 시각과 정신으로 자신을 비춰보며 인간성의 한계를 시험하고 삶을 바꾸려 시도한다.

  

매는 슬퍼하지도 않고 상처를 입지도 않는다.

그저 사냥하고 죽일 뿐이다.

스코트랜드 부둣가의 어느 눅눅한 아침

한 낯선 남자가 겁에 질려 더덕거리는

검은 발톱과 부드러운 은색 눈빛의 매 한마리를

상자에서 꺼내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매에게 "메이블"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고

케임브리지로 데려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표지글 중>

 

2. 상실

  강탈당하다. 빼았기다.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혼자서 느낀다. 충격적인 상실감은 아무리 노력해도 공유할 수 있는게 아니다. 그 시절 나는 친구 몇명에게 이런 말을 했다.

  "상상해 봐. 너희 가족인 한방에 있다고 말이야. 맞아, 온 가족이 다. 너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모여 있어. 그때 누군가 방에 들어와 너희 가족 모두의 배를 때리는 일이 벌어져. 가족 하나하나 다를, 정말 세게. 그래서 다들 바닥에 쓰러져. 알겠어? 그러니까 모두 같은 종류의 통증을, 똑같은 통증을 겪는데 각자 고통에 시달리느라 바빠서 완전히 혼자인 것 외에는 다른건 느낄 수가 없는거지. 이건 바로 그런 거랑 비슷해!"(P. 31)

 

11. 어둠

  메이블이 사는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니다. 매에게 삶은 더 빠르고 시간은 더 더디게 흐른다. 우리 눈이 새의 날개짓을 좇듯 매의 눈은 벌의 날갯짓을 좇아갈수 있다. '메이블이 뭘 보고 있을까?' 궁금하여, 머리를 뒤로 공중제비하듯 마구 돌리면서 상상하려고 애쓴다. 난 볼수가 없으니까. 내 눈에는 세가지 시각세포 감도가 있어서 나는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을 본다. 매는 다른 새들처럼 네 가지 색을 본다. 내기 보지 못하는 색을 볼수 있고, 자외선 스펙트럼을 직접 쳐다볼수 있다. 매는 편광된 빛을 볼 수 있고, 상승하고 소용돌이쳐서 구름 속으로 쏟아지는 온난기류도 볼 수 있다. 또 땅위에 뻗어 있는 자력선도 볼 수 있다. 매의 깊고 검은 동공에 쏟아져 들어오는 빛, 매는 내가 흐릿하다고 일반화 할 뿐 보지 못하는 것들을 무서울 만치 정확하게 인식한다. 머리 위에 있는 흰털발제비의 발가락에 붙은 발톱. 안뜰 끝 쪽에 핀 겨자 위에서 흔들흔들 길을 찾아가는 흰 나비의 날개에 있는 맥. 내가 가련한 인간의 눈으로 보는 빛과 사소한 것들에압도되어 거기 서 있는 사이, 매는 색칠 책에 신나게 색을 문지르고 빈 곳을 채우며 페이지마다 자기것으로 만드는 아이처럼 허기진 듯 강렬하게 모든 것을 지켜본다. 그럴 때 내가 할수 있는 생각은 '다시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밖에 없다.(P. 163)

 

17. 더위

  매를 자유롭게, 줄에 매지 않고 날리면 매가 멀리 날아가 버리는 것을 막을 장치가 없다. 다만 우리 사이에 흐르는 끈이 있을 뿐. 그것은 손으로 만져질 듯 하지만 물리적인 선은 아니다. 습관, 허기, 파트너쉽, 친숙함의 끈. 옛 매잡이들이라면 사랑이라 부를 무언가의 끈일 뿐 . 매를 자유롭게 날리는 것은 늘 오싹하다. 여기가 이런 끈을 시험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에 대한 신뢰를 잃은 매잡이가 심장이 먼지가 되어 버린 매잡이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아니다. (P. 254)

 

23. 추모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버지와 내가 저지른 엄청난 실수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기은 상처를 치유하려면 야생 세계로 달아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사람들은 그런 방식으로 치유했다. 내가 읽은 자연에 대한 책들은 그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이 한이나 슬픔에 자극받아 탐구자가 되었다. 일부는 희구한 동물들의 달인이 되는데 매진했다.

  <중략>

  이제 나는 이말의 본질을 알았다. 이것은 매혹적이지만 위험한 거짓말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고, 그것이 내게 필요한 치료법이라는 무의식적인 확신에 화가 났다. 손은 다른 사람의 손을 잡으라고 있는 것이다. 손은 매의 횃대 노릇만 하게 두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야생은 인간 영혼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야외에 너무 노출되는 것은 영혼을 좀먹어서 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집에 돌아올 즈음에는 메이블이 그렇게 이상하게 행동했던 이유를 완전히 알아차렸다. 매는 우리가 언덕에서 보낸 몇주 사이 근육이 많아지면서 무거워졌고, 에전보다 더 많은 체중으로 비행하기는 했지만 지난주에는 고도가 아주 낮았다. 메이블은 허기졌다. 허기가 메이블을 공격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기차에서 처음으로 그 큰 실수를 깨닫자 나 자신에게 부아가 치밀었다. 하지만 이 두번째 깨달음은 곧 자기 혐오를 불러왔다. 나는 너무나 몽매했고, 너무도 괴로워서 내 매도 괴롭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매를 아예 보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사랑에 빠졌던 남자가 기억났다. 나는 그 사람을 잘 몰랐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상실감을 무마하려고 그를 선택해서 내게 필요한 모든것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나는 매가 되기 위해 도망쳤지만, 괴로움 속에서 내가 한 일은 매를 내 거울로 만든 것 밖에 없었다. (P. 342~343)

 

29. 봄이 시작되다

  나는 화이트의 글을 떠올리고, 그 마지막이 아주 이상하고 서글프다고 생각한다. 책을 펼쳐 들고 서서, 내 매를 역사의 소산인 상형문자나 잘못 기억한 악당으로 폄하하지 않겠노라 스스로 맹세한다. 물론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럴 수가 없다. 왜냐면 메이블은 인간이 아니니까. 내가 몇 달간 메이블과 지내면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저기 밖에는 사물들의-바위, 나무, 돌, 풀잎, 기고 뛰고 나는 모든 것들의-세계가 있다는 점이다. 그것들은 그 자체로 완전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에게 우리의 세계관을 받쳐 줄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납득할 만한 존재로 만든다. 메이블과 함께하면서, 상상으로라도 인간이 아닌 기분을 안다면 인간미를 더 느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사물에 부여하는 야생을 본래의 야생과 혼동하면서 생기는 위험도 알게 되었다. 참매는 죽음이나 피와 밀접한 사물이지만, 잔학함이 핑곗거리는 아니다. 참매는 인간과 아무 상관도 없으므로 매의 비인간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화이트의 책을 서가에 꽂고 차를 한잔 준비한다. 나는 사색하는 기분에 젖는다. 나는 매를 내 세계에 데려왔고 그러다가 내가 매의 세계에 사는 체했다. 이제는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는 분리된채 행복하게 각각의 삶을 공유한다. 나는 손을 내려다본다. 손에 흉터들이 있다. 가늘고 하얀 줄들. 하나는 메이블이 허기져 화를 낼 때 발톱으로 긁은 상처다. 그것은 생살로 하는 경고처럼 느껴진다. 메이블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찾아다니다가 산울타리 사이에 들어 갔을 때 블랙손에 찢긴 상처도 있다. 다른 흉터들도 있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들은 메이블이 만든게 아니라 아물도록 도와준 상처들이다. (P. 43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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