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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성혜영 | 2014.12.24 07:20 | 조회 1184

2014년 10월 22일

알랭 드 보통, 문학동네

 

-예술의 일곱가지 기능

· 기억

 우리의 출발점은 기억이다. 우리는 기억하는데 서툴다. 우리의 마음은 난처하게도 사실적이든 감각적이든 중요한 정보를 잘 잊어 버린다. 글쓰기는 분명 망각의 결과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이고, 미술은 그 다음으로 중요한 방편이다.(p.8)

 

· 희망

 만약 세상이 좀 더 따뜻한 곳이라면, 우리는 예쁜 예술작품에 이렇게 까지 감동하지 않을 테고, 그런 작품이 그리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예술적 경험의 가장 이상한 특징론 중 그런 순간은 괴롭거나 무시무시한 이미지를 대면할 때가 아니라 특별히 우아하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즉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작품과 마주칠 때 찾아온다. 아름다움에 격렬히 반응하는 이 특별한 순간 우리에게 무슨일이 일어나는 걸까?(p. 15)

 

· 슬픔

 보다 중요한 면으로, 세라의 작품은 슬픔을 품위있게 보여준다. 세부적으로 들어가지 않고, 고통의 구체적인 원인을 전혀 분석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슬픔을 웅대하면서도 어디에느 존재하는 감정으로 제시한다. 사실상 작품은 이렇게 말한다. '슬픔을 느낄 때 당신은 존경할 만한 경험에 참여하고 있으며. 나. 즉 이 기념비는 그 경험을 위해 형성되었다. 당신의 상실감과 실망, 날개 꺾인 희망과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비탄은 당신을 진지한 회합의 일원으로 고양시킨다. 그러니 당신의 슬픔을 외면하거나 내버리지 말라.'

 우리는 수많은 예술적 성취를 예술가의 '승화된' 슬픔이라고 보고, 결국 관객도 작품을 접하며 슬픔을 승화시킨다고 본다. 승화라는 말은 화학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단단한 물질이 액체 상태를 거치지 않고 직접 기체로 변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예술에서 승화는 천하고 보잘것 없는 경험이 고상하고 세련된 경험으로 변화되는 심리적 변형을 가리킨다. 슬픔이 예술을 만날 때 일어날 수 있는 바로 그것이다.

 많은 경우, 슬픈 일들이 더 슬프지는 건 우리가 혼자 슬픔을 견디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근심을 저주로, 또는 우리의 사악하고 저열한 성격을 노출시키는 불운의 손길로 경험한다. 그래서 우리의 고통에 품위 같은건 전혀 없고, 소통은 우리의 기형적인 본성에 딱 들어 맞는다고 느낀다. 최악의 경험에서도 존엄을 지키려 할 때 도움이 필요하다면, 예술은 우리가 그런 경험을 사회적으로 표출하도록 해주기 위해 우리 곁에 존재한다. (p. 26~30)

 

-감상

 우리의 주된 결점, 우리를 불행에 빠뜨리는 원인 중 하나는 우리 주위에 늘 있는 것을 알아 차라지 못하는데 있다. 우리는 눈 앞에 있는 것의 가치를 보지 못해 고생하고, 매혹적인 것은 다른 곳에 있다고 상상하면서 종종 엉뚱한 갈망을 품는다.

 문제의 한 원인은 상황에 익숙해 지는 우리의 능력, 즉, 우리가 습관화 라는 기술의 달인이라는데 있다. 습관이란 인각적인 기능의 전 분야에 걸쳐 행동을 기계적으로 만드는 메카니즘이다. 습관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혜택을 준다. 운전 습관이 들기 전 우리는 운전대 앞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을 빈틈없이 의식해야 한다. 소리, 빛, 움직임에 그리고 강철 상자를 조종해 빠르게 세상을 누비고 다닐수 있다는 순진하고도 놀라운 경이로움에 바짝 긴장해 모든 감각을 동원한다. 이 과잉의식 때문에 운전은 신경과민의 시금석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몇년을 타고 다니고 나면 점차 기어변속이나 계기판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먼 길을 운전하게 된다. 행동은 기계적이 되고, 로타리를 도는 동안 인생의 의미에 침잠할수도 있다.

 그러나 습관은 꼭 그 만큼 불행의 원인이 되기도 쉽다. 익숙하지만, 주의깊게 교감할 만한 것들을 마음에 새기지 않는 습관에 젖을 때, 불행이 튀어나온다.(도로 위에서 완벽하게 경험 하듯이) 중요한 것에 집중 할 수 있게 덜 중요한 것들을 삭제하는게 아니라,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안겨 줄수 있는 요소들을 삭제하고 만다. (p. 59) 

 

-어떤 종류의 예술을 창착해야 하는가?

 많은 부부들이 저녁식사를 할때 고통스러운 갈등을 겪는다. 가령 어느 한쪽이 빈정대거나 의심한느 투로 "당신 오늘 어땠어?"라고 묻는다. 불씨는 대게 별것 아니다. 한쪽은 귀에 거슬리는 말을하고, 상대방은 비참한 마음에 표정이 굳는다. 뛰쳐 나가는 쪽은 분노가 일지만 그런 자신이 괴물처럼 느껴진다.('어떻게 이런 감정이 들 수 있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난 당신이 미워' '난 내가 미워' '난 나를 미워하게 만드는 당신이 미워'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고 싶은, 근본적이지만 좌절된 갈망을 암시하는 단서들이 작품에 담긴다면 좋을 것이다. 아마 식탁은 멋지게 차려져 있을 것이다. 한쪽은 둘다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다른쪽은 울고 있다. 부부는 좋을 사람들이며, 우리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은 호감가는 사람들이지만, 정말 어려운 문제에 붙잡혀 있다. 그들의 고통이 예술작품으로 인해 보다 품위를 갖추게 되고, 덜 파국적이고 덜 외로워 질 수 있을까? (p.79)

 

-우리는 더 잘 사랑할 수 있을까?

 거의 2세기가 지난 후 오스카와일드는 당대의 가장 인기 있는 화가를 언급하며 라로슈푸코의 사랑에 대한 통찰을 미술에 적용해 명언을 만들어 냈다.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까지 런던에 안개가 없었다." 와일드의 말은 사람들이 영국의 수도를 관통하며 흐르는 길은 수증기를 보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의 정확한 요점은 화가가 풍부한 재능을 통해 안개의 지위를 끌어오리기 전까지 사람들은 안개를 봐도 흥미나 짜릿함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대한 예술에는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는 힘이 있다. (p. 102)

 

-사랑은 어떻게 유지애햐 할까?

 연인관계에서 나타나는 대단히 우울한 양상은, 처음 알았을 땐 더 없이 감사하다고 느꼈던 사람에게 너무나 빨리 익숙해 진다는 사실이다. 손목이나 어꺠만으로도 우리를 흥분시켰던 사람이 눈앞에 벌고 벗고 누워있어도 무덤덤하기만 하다.

상대방을 재평가하고 다시 갈망하게 되는 법을 고려할 때, 예술가들이 익숙한 것을 다시 보는 방법을 관찰하면 본받을 점을 얻을 수 있다. 연인과 예술가는 똑 같은 인간적 약점에 부딫힌다. 쉽게 저주해지고, 사람이든 사물이든 일단 알고나면 관심을 기울일 가치가 없다고 선언하는 보편적 경향이 그것이다. 따분해 버린 것에 대한 우리의 간과하기 쉬운, 경험의 감춰진 매력을 일깨운다. 또한 그런 작품을 찬찬히 보다보면 감상하는 능력에 다시 불이 붙는다. (p.124) 

 

-가을을 예견하다.

자연은 생명의 동인이자 우리를 죽음으로 이끄는 힘이다. '자연의 순리대로' 살 필요가 있다고 말 할 때, 이는 우리를 젊음의 열정과 햇빛의 아름다움에 내 맡기는 것은 물론이고, 가을과 내리막을 받아 들일 줄을 알아야 함을 의미한다.

(중략)

우리가 억누리고 있는 걱정거리는 생의 특별한 마지막 순간이 아니다. 거기엔 우리가 나이를 먹고, 건강을 잃고, 시들고 쇠약해 진다는 사실이 딸려 있다. 생의 현 단계는 순식간에 흘러가고 돌이켜 보면 무상하기 그지 없다. 스무살이 되면 일곱살 때 보낸 수천시간은 휴지조각처럼 느껴진다. 쉰살이 되면 이십대에 보낸 십년 세월이 한 순간 처럼 덧없어 진다. 삶의 문제들은 오늘, 우리 앞에 펼쳐진 며칠, 그리고 강렬하거나 혹은 멍한 몇식나 동안 아주 크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모두 사소해져 기억조차 희마한 하찮은 과거의 일이된다.

 예술은 거기에도 도움이 될수 있다. 예술이란 현재를 앞질러 가, 자연이 우리를 데려갈 종착점에 대비해 우리의 합리적, 감각적 자아를 준비시켜 주는 상상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p. 142)

 운명적인 죽음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면 다가 올 일에 마음이 보다 정밀하게 조율되고, 그에 따라 우리는 가진것에 감사하고 그 가치를 더 깊이 느끼게 된다. (p.148)

 

-이제…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예술의 진정한 목적은 예술이 덜 필요하고 덜 예외적인 세계를 창조하는데 있다. 그 세계에서는 오늘날 사람들이 미술관의 격리된 전시실에서 발견하고, 찬양하고,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가치들이 온 세상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을 것이다. 예술을 사랑한다면서도 사회가 언젠가는 예술때문에 야단 법석 떨지 않게 될거라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예술에 대한 진정한 열망은 그 필요성을 줄이는데 있어야 한다. 어느날 갑자기 예술이 다루는 가치, 즉, 아름다움, 의미의 깊이, 좋은 관계. 자연의 감상, 덧 없는 인생에 대한 공감, 자비 등에 냉담해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예술이 나타내는 이상들을 흡수한 뒤, 아무리 우아하고 의도적이어도 단지 상징적으로 밖에 드러내지 못하는 가치들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싸워야 된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의 궁극적 목표는 예술 작품이 조금 덜 필요해 지는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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